책 읽는 삶 | 조성웅 | 2022-09-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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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니아 연대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등 수많은 인생에 감화를 끼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들의 저자이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오랜 시간 영문학을 가르쳤던 존경받는 스승,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칭송받는 C. S. 루이스. 그는 매일 일고여덟 시간 책을 탐독하던 사람이었다.
루이스의 유명 저서를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에세이, 편지 등에서 '삶의 변화를 낳는 독서 행위'에 대한 글을 엄선한 책이 출간되었다. 영상물이 세상을 독식해 가는 요즘, 독서욕을 공유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재미있고 기발하고 지혜로운 글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목차
엮은이의 글. 내면세계가 확장되는 한 권의 책 읽기
Part 1. 이토록 소중한 독서라니! : 독서라는 예술, 그 희열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 나는 진정한 독서가일까? / 동화,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 / 문학은 시간 여행 / 동화,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하다 / 고서(古書)를 읽어야 한다 / 이야기에서 '기현상'이 담당하는 역할 / 책의 바다에서 성장하다 / 제일 좋아하는 작가를 처음 만난 순간 / 영화가 때로 책을 망쳐 놓는 이유 / 단어를 죽이는 법 / 찬사의 나락에서 단어를 구하라 / J. R. R. 톨킨의 위업 / 영웅 무용담(saga)과 실제 역사를 혼동하는 위험 / 두 가지 여행법, 두 가지 독서법
Part 2. 삶이 피어나는 독서의 자리로 : 책 읽기에 날개를 달아 줄 생각들
단어의 조합, 시어의 매력 / 진실성과 글쓰기 재능 / 문체의 위력 / 책 '속에' 있지 않고 책을 '통해' 오는 것/ '재미'를 위한 책 / 독창성을 갖고 싶다면 / '최신'을 믿는 신화 /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는다? / '폭넓은 취향'의 의미 / 진정으로 책을 향유하는 사람 / 문단(文壇)의 속물들 / 좋아하는 책은 10년마다 다시 읽어야 한다 / 책을 통한 풍부한 간접 경험 / 다 읽지 않아도 된다 / 책을 읽을 자유를 위하여 / 허클베리 핀 / 유년기의 영광 / 제인 오스틴 / 예술과 문학이 건강하려면 / 예술 작업 / 보라, 들으라, 받으라 / 읽은 책에 관해 대화하기 / 편지 쓰기의 좋은 점 / 단테 예찬 / 알렉상드르 뒤마 / 동화가 안겨 준 뜻밖의 선물 / 논평의 언어 / 삶의 정수를 소통하려면 / 독서의 맛을 돋우는 나만의 비결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시, 작은 성육신 / 조금만 더 읽는다면 / 셰익스피어 / 《햄릿》만의 풍미 / 레오 톨스토이 / 글쓰기를 위한 조언 / 좋은 독서
부록. 나의 독서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
책속에서
P. 8~9 '당대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 무엇이든 읽고, 읽은 것은 전부 기억한 사람.' 저명한 비평가 윌리엄 엠프슨은 C. S. 루이스를 이렇게 평했다. 좀 과장한 것 아닌가 싶겠지만 문학과 철학과 고전 영역에서는 사실에 가깝다. 루이스는 열 살 때 존 밀턴의 《실낙원》(Paradise Lost)을 읽었고, 열한 살 때부터 벌써 편지에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들을 인용해서 적어 넣기 시작했다. 이후 평생 동안 그 습관은 계속되었다. 십 대 중반에는 고전과 현대 작품을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읽었다. 게다가 루이스는 읽은 것을 정말 대부분 기억했던 것 같다. 한 제자의 회고에 따르면, 누가 《실낙원》에서 아무 대목이나 골라 인용하면 루이스가 기억을 되살려 이어지는 뒷말을 읊곤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제자는 자기가 루이스의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펴고 읽기 시작하면 루이스가 그 페이지의 나머지 내용을 요약했는데, 언제나 아주 정확했다고 증언한다.
P. 21~22 우리 가운데 평생 진정한 독서가로 살아온 이들은 여간해서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존재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작가들 덕분이다. 좀체 책을 읽지 않는 친구와 대화해 보면 이 점이 제대로 와닿는다. 그는 아주 선량하고 사리 분별력도 꽤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 작다. 우리라면 아마 그 속에서 숨이 막힐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다가 결국 자아 이하가 된 사람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내 눈만으로 부족하기에 타인의 눈으로도 볼 것이다.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현실만으로는 부족하기에 타인이 지어낸 허구의 세상도 볼 것이다. 온 인류의 눈으로도 부족하다. 나는 동물이 책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동물도 책을 쓴다면 생쥐나 꿀벌에게 사물이 어떻게 비치는지 아주 즐겁게 배울 것이고, 온갖 정보와 감정으로 가득한 개의 후각 세계도 더 즐겁게 탐색할 것이다. 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준다.
P. 38 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 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 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좋은(당연히 서로 견해가 다른) 교사들에게 배워서, 과거가 여태 살아 있는 유일한 곳(문학)에서 과거를 접한 학생(어린 학생까지도 포함해서)은 자신이 사는 한정된 시대와 계급에서 벗어나 더 공적인 세상으로 들어간다. 헤겔이 말한 '정신현상학'을 제대로 배우면서 다양한 인간상에 눈뜨는 것이다. '역사'만으로는 그것이 안 된다. 역사는 과거를 주로 이차 문헌으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몇 년씩 '역사를 공부하고도' 결국 앵글로색슨족 백작이나 기사, 18세기 지방의 대지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모를 수도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진면목은 거의 문학에서만 볼 수 있다.
P. 44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 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 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앞서 말한 부류의 학교 소설을 읽는 아이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책이 끝나면) 불행하다. 자기는 그 성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대개 사실주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년 소녀를 위한 학교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판타지(문학)보다 학교 소설이 엄밀한 의미의 '공상'(판타지)일 소지가 훨씬 높다는 것뿐이다.
P. 51~52 영문학 교수로 일하면서 늘 보면 플라톤 철학을 배우겠다는 학생도 정작 도서관 서가에서 번역판으로라도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을 뽑아 읽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보다 열 배나 더 두껍고 따분한 현대 서적을 읽는데, 온통 무슨 무슨 '주의'ism와 그 사조가 끼친 영향을 기술한 내용일 뿐 실제로 플라톤이 한 말은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온다. 겸손에서 비롯된 과오라 그나마 정감이 간다. 학생은 위대한 철학자를 직접 대면하기가 내심 두렵다. 자신이 부족해서 플라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현대 해설자보다 이 위인을 이해하기 훨씬 더 쉽다. 괜히 위대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지한 학생도 플라톤의 말을 다는 몰라도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지만, 플라톤 철학을 다룬 일부 현대 서적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늘 교수로서 각별히 후학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직접 지식이 간접 지식보다 습득 가치가 높을뿐더러 대개 습득하기도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이다.
P. 56~57 요즘 시대 책들은 그 내용이 옳은 경우에는 우리에게 이미 어설프게 알던 진리를 줄 뿐이고, 틀린 경우에는 이미중병 수준인 우리의 과오를 가중시킬 뿐이다. 유일한 완화제는 우리 머릿속에 '역사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계속 쐬는 것인데, 그러려면 고서를 읽어야만 한다. 물론 과거라고 무슨 마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도 인간은 지금만큼밖에 똑똑하지 못했고, 우리처럼 많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지금과 똑같은 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범한 과오와 관련해 아첨하지 않으며, 그들의 과오는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기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어느 한쪽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니라 둘이 똑같은 길로 잘못 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의 책도 과거의 책만큼이나 우리를 잘 바로잡아 주겠지만, 불행히도 지금 우리는 미래의 책을 손에 넣을 길이 없다.
P. 113 신화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여태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풍부한 의미를 되살려 낸다. 그것이 신화의 가치다. 아이는 식어서 (밍밍한) 고기를 방금 자기가 활을 쏘아 잡은 들소라고 생각하며 즐긴다. 현명한 아이다. 현실의 고기 그대로인데 이야기에 담그니 더 맛있어진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고기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풍경이 식상하거든 거울에 비추어 보라. 빵이나 금이나 말이나 사과나 길을 신화에 담글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다.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한 현실은 더 현실다워진다. 이 책은 빵이나 사과만 아니라 선과 악, 우리의 끝없는 위험과 고뇌와 기쁨까지도 그렇게 다시 보게 해 준다. 신화에 담그면 더 똑똑히 보인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그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P. 136 말이 난 김에 말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는다는 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동시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들의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따지자면 자기와 직업이 같거나 머리칼 색깔이 같거나 수입이 같거나 가슴둘레가 같은 모든 사람의 책도 읽어야 할 것입니다.
P. 144 책을 읽을 때 절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아주 어리석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쓸모없는 장이 나올 때 주저 없이 건너뛴다.
P. 156~157 여태 내가 읽은 모든 시 가운데 대체로 단테의 시가 최고다. 그런데 그의 시의 탁월함이 최고 정점에 이를 때면, 정작 단테가 하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위대한 시가 저절로 써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기껏해야 시인은 최소한의 역할로 군데군데 살짝 손만 대서 에너지의 방향을 잡아 줄 뿐이고, 대부분은 에너지가 저절로 뭉쳐 절묘한 전개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이루어 나간다. …… (중략) …… 요컨대 시 예술 전반에서 최고 경지는 결국 일종의 물러남이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 전체가 그의 뇌리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시인은 길을 비켜나기만 하면 된다. 가만히 있으면 파도가 밀려오고, 산들이 잎을 흔들고, 빛이 비쳐 들고, 천체가 회전한다. 이 모두가 시를 짓는 데 필요한 소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시다.
P. 162 그런 책을 속속들이 즐기려면 독서를 일종의 취미로 삼아 진지하게 임해야 하네. 우선 나는 맨 뒤쪽 빈 페이지에 지도를 그리고, 인물 계보를 한두 개의 도표로 작성한 다음, 끝으로 어떤 이유로든 내가 밑줄을 쳐 둔 모든 단락 끝에 색인을 만들지. 사진 현상이나 스크랩북 작성을 흔히들 어떻게 즐기는지 생각해 보면, 왜 독서는 이런 식으로 취미로 삼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종종 의문일세. 꼭 읽어야만 했던 많은 따분한 책도 나는 이 방법으로 즐겨 왔거든. 손에 세필(細筆)을 쥐고서 말일세. 늘 무언가를 만드는 셈이지. 이렇게 읽은 책은 책의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장난감처럼 정까지 든다네.
P. 10 그러나 모티머 애들러가 말했듯이 ˝좋은 책의 관건은당신이 몇 권을 독파하느냐가 아니라 그중 몇 권이 당신을독파하느냐에 있다.˝ - 애니샘^^
P. 12 ˝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준다. •••••• 훌륭한 문학을 읽으면 나는 천의 인물이 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 있다.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는무수한 눈으로 보지만, 보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 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자식을 얻는 순간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 다운 때는 없다˝ - 애니샘^^
P. 21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다가 결국 자아 이하가 된 사람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 애니샘^^
P. 23 거의 원칙으로 정하고 싶거니와, 아이들만 즐기는 동화는 부실한 동화다. 좋은 동화는 평생 간다. 왈츠를 직접 출때만 좋아할 수 있는 왈츠곡은 수준이 낮다. 이 원칙은 동화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르인판타지 즉 공상소설의 경우에 더할 나위 없이 옳아 보인다. - 애니샘^^
P. 39 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벗어 버리계 하는 것이다. - 애니샘^^
P. 44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 애니샘^^
P. 55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 애니샘^^
P. 62 쉰 살 때도 똑같이 (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 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물론 정보 도서는 예외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 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 애니샘^^
P. 66 아버지는 읽는 책마다 모두 가져와서 하나도 버리지않았다. 서재의 책, 응접실의 책, 외투 보관실의 책, (두 줄씩 꽂혀 있던) 층계참 대형 책장의 책, 침실의 책, 물탱크를들여놓은 다락에 내 어깨 높이로 쌓여 있던 책, 부모님의관심 변천사를 낱낱이 보여 주던 온갖 종류의 책, 읽기 쉬운 책과 어려운 책, 아이에게 적합한 책과 전혀 그렇지 않은 책 등 그야말로 책 천지였다. 그중 내게 금지된 책은 하나도 없었다. - 애니샘^^
P. 97 말하는 법을이미 잊은 내용에 관해서는사람의 생각도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 애니샘^^
P. 121 나는 뻔히 틀렸거나 편향된 역사를아이에게 사뭇 진지하게 주입하는 행위야말로아주 해롭다고 생각한다. 이는 영웅의 전설을 마치 사실인 양교과서에 칙칙하게 위장하는 것이다. - 애니샘^^
P. 133 문학의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은 즐거움을 위해 가볍게읽도록 되어 있다. 느긋하게 앉아서 어떤 의미에서 ˝재미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문학을 본래 용도대로 쓰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의 모든 비평도 순전히허사가 되고 만다. - 애니샘^^
P. 136 말이 난 김에 말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는다는 것이다 무슨 소용입니까? 동시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작가들의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 애니샘^^
P. 142 단언하는데,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야 하네. - 애니샘^^
P. 145 국가는 단순히 현세에서 인간의 평범한 행복을 키우고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불을 쬐며 한담을 나누는 부부, 선술집에서 다트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 자기 방에서 책을 읽거나 정원에서 땅을 파는 남자 - 바로 이를 위해 국가가 있다. 그런 순간들을 늘리고 지속시키고 지켜 주지 않는 한모든 법률과 의회와 군대와 법정과 경찰과 경제 등은시간낭비일 뿐이다. - 애니샘^^
P. 173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 애니샘^^
P. 34 톨킨에 따르면 우리가 동화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인간이란 ˝창조할 때(시쳇말로 ˝삶에 관해 논평할 때가 아니라 가능한 한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지어낼 때) 본연의 역할을 최대한 다하기 때문이다. - 애니샘^^
모티머 애들러가 말했듯이 ˝좋은 책의 관건은당신이 몇 권을 독파하느냐가 아니라 그중 몇 권이 당신을독파하느냐에 있다.˝ - gaudium
루이스가 종종 말했듯이 독서에 열심인 사람들이 함께모이면 거기서 공동체가 생겨난다(‘나는 진정한 독서가일까?˝를참고하라), 이는 단지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단체다. - gaudium
톨킨에 따르면 우리가 동화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인간이란 ˝창조할 때(시쳇말로 ˝삶에 관해 논평할 때가 아니라 가능한 한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지어낼 때) 본연의 역할을 최대한 다하기 때문이다. 톨킨이 보기에 그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해야 할 구실 가운데 하나다 보니, 이를 성공리에 수행할때마다 우리는 자연히 즐거워진다. 융은 동화가 집단 무의식 속에 살고 있는 각종 "원형"을 해방시킨다고 보았다. 좋은 동화를 읽을 때 우리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옛 격언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 gaudium
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 gaudium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 gaudium
앞서 말한 부류의 학교 소설을 읽는 아이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책이 끝나면) 불행하다. 자기는 그 성공을 얻을 수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대개 사실주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 gaudium
학생은 위대한 철학자를 직접 대면하기가 내심 두렵다. 자신이 부족해서 플라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현대 해설자보다 이 위인을 이해하기 훨씬 더 쉽다. 괜히 위대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지한 학생도 플라톤의 말을 다는 몰라도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지만, 플라톤 철학을 다룬 일부 현대 서적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늘 교수로서 각별히 후학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직접 지식이 간접 지식보다, 습득가치가 높을 뿐더러 대게 습득하기도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이다. - gaudium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 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 gaudium
요즘 시대 책들은 그 내용이 옳은 경우에는 우리에게이미 어설프게 알던 진리를 줄 뿐이고, 틀린 경우에는 이미중병 수준인 우리의 과오를 가중시킬 뿐이다. 유일한 완화제는 우리 머릿속에 ‘역사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계속 쓰는것인데, 그러려면 고서를 읽어야만 한다. - gaudium
물론 과거라고 무슨 마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도 인간은 지금만큼밖에 똑똑하지 못했고, 우리처럼 많은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지금과 똑같은 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범한 과오와 관련해 아첨하지 않으며, 그들의 과오는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기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지 못한다. - gaudium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어느 한쪽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니라 둘이 똑같은 길로 잘못 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gaudium
쉰 살 때도 똑같이 (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 gaudium
˝정상적인 하루란 곧 부컴의 원형대로 사는 날을 뜻한다. (애석하게도 그런 날은 아주 드물다).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늘나는 거기서 살던 대로 살 것이다. 늘 정각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책상에 앉아 오후 1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다. 11시쯤 좋은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 gaudium
정각 1시에는 점심이 차려져 있어야 한다. 늦어도 2시에는 산책을 나가는데, 가끔 친구와 동행할 때를 빼고는 혼자 가겠다. 산책과 대화는 각기 아주 즐거운 일이지만 둘을섞는 것은 잘못이다. 야외 세계의 소리와 정적을 말소리가.....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함께 산책해도 되는 친구는 전원의 수많은 풍경을 느끼는 취향이 나와 똑같아서 눈빛을 교환하거나 걸음을 머추거나 끽해야 팔꿈치로 살짝 치는 정도만으로도 서로 기쁨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만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 gaudium
그러나 단어를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사람이그 단어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찬반을 표현하려는욕심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는 점점 묘사에서 멀어져 평가에 가까워진다. 한동안은 그 평가에 왜 좋거나 나쁜지가 아직 살짝 암시되어 있지만, 결국은 순전히 평가만 남는다. ˝좋다˝나 ˝나쁘다˝ 의 무익한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 gaudium
하지만 다른 여행법과 다른 독서법도 있다. 현지 음식을 먹고 그 지방에서 생산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외국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그곳을 관광객 눈에 비치는 타국이아니라 현지 주민의 나라로 볼 수 있다. 돌아올 때는 생각과 느낌이 이전과 달라져 있을 수 있다. - gaudium
해외로 떠나는 휴가를 관광객으로서만 보내는 일은 내게는 유럽을 낭비하는것으로 보인다.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난 시대의 문학에 우리 자신의 얼굴만 비추어보고 만다면 그것은 과거를 낭비하는 것 아닐까? - gaudium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의지하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않고 이를 통해 올 뿐이다. 결국 책이나 음악을 통해 오는것은 그리움이다. - gaudium
친구가 아주 많다 해서 내가 인간의 탁월한 진가를 폭넓게 인정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내 서재에 있는 책을 다즐길 수 있다 해서 내 문학적 취향이 폭넓다는 증거가 아닌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답은 똑같다. ˝그 책들은 당신이선택했고 친구들도 당신이 선택했다. 그러니 당신에게 맞을 수밖에 없다.˝ - gaudium
폭넓은 취향의 독서란 헌책방 바깥에 내놓은 책에서도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인간에 대한 취향도 참으로 폭이 넓다면, 날마다 마주치는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낸다. - gaudium
단언하는데,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야 하네. - gaudium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 gaudium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 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문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쪽) - 수수꽃다리
우리는 자신의 눈과 상상력과 마음으로만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상상력으로 생각하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기를 원한다. (17쪽) - iamjune
우리 가운데 평생 진정한 독서가로 살아온 이들은 여간해서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존재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작가들 덕분이다. 좀체 책을 읽지 않는 친구와 대화해 보면 이 점이 제대로 와닿는다. 그는 아주 선량하고 사리 분별력도 꽤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 작다. 우리라면 아마 그 속에서 숨이 막힐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다가 결국 자아 이하가 된 사람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21쪽) - iamjune
지금의 나는 동화 못지않게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과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즐겨 읽는다. 이 또한 성장이다.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30쪽) - iamjune
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 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 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38쪽) - iamjune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 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54쪽) - iamjune
쉰 살 때도 똑같이(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 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물론 정보 도서는 예외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 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62-63쪽) - iamjune
˝이야기에 불과한˝ 책 즉 인물이나 사회가 아니라 가상의 사건이 주관심사인 책을 두고 논할 때면, 거의 누구나 책이 주거나 본래 주어야 할 즐거움은 ˝흥분˝뿐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흥분은 가상의 불안을 대신하는 긴장과 해소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는 잘못이다. 독자와 책에 따라 또 다른 요소도 개입된다. (82쪽) - iamjune
단어를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사람이 그 단어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찬반을 표현하려는 욕심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는 점점 묘사에서 멀어져 평가에 가까워진다. (87쪽) - iamjune
현실의 풍경이 식상하거든 거울에 비추어 보라. 빵이나 금이나 말이나 사과나 길을 신화에 담글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다.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한 현실은 더 현실다워진다. 이 책은 빵이나 사과만 아니라 선과 악, 우리의 끝없는 위험과 고뇌와 기쁨까지도 그렇게 다시 보게 해 준다. 신화에 담그면 더 똑똑히 보인다. (113쪽) - iamjune
과거의 문학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특정한 시가 당신의 현대적 감성에 남기는 첫인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시 외적인 요소를 공부하고, 다른 시들과 비교하고, 지나간 시대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시 속에 다시 들어가 좀 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알고 보면 당신이 고어에서 연상한 의미는 잘못되었고, 실제 함의는 당신의 짐작과 달랐을 수 있다. 당신에게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그때는 평범했고, 평범해 보이는 부분이 그때는 이상했을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최대한 이러한 독서를 돕기 위해서다. (122쪽) - iamjune
폭넓은 취향의 독서란 헌책방 바깥에 내놓은 책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취향도 참으로 폭이 넓다면, 날마다 마주치는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낸다. (137쪽) - iamjune
우리는 의식이 있는 존재인 만큼, 날마다 종일 우리 삶을 구성하는 정수는 암시와 직유와 은유와 감정을 통하지 않고는 소통될 수 없다. 어떤 감정은(그 자체로는 썩 중요하지 않지만) 삶을 엿보는 단서가 된다. (161쪽) - iamjune
우리는 자신의 눈과상상력과 마음으로만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보고타인의 상상력으로 생각하고타인의 마음으로느끼기를 원한다. - 우민(愚民)ngs01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즐겁다면 - 우민(愚民)ngs01
읽은 내용을 계속 반추하고 떠올린다면 - 우민(愚民)ngs01
나는 열 살 때는 동화를 몰래 읽었고, 만일 그러다 들켰다면 창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50세가 된 지금은동화를 드러내 놓고 읽는다. 나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는데, 유치함에 대한 두려움과훌쩍 어른이 되고 싶던 마음도함께 버렸다. - 우민(愚民)ngs01
문학은 시간 여행 - 우민(愚民)ngs01
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 우민(愚民)ngs01
아이가마법의 숲 이야기를 읽었다 해서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 우민(愚民)ngs01
고서를읽어야 한다. - 우민(愚民)ngs01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개인 기도 Letters to Malcolm》, 1장 - 우민(愚民)ngs01
그냥 기술만 하기란 불가능하다. 말에는 이야기를 하는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 우민(愚民)ngs01
폭넓은 취향의 독서란 헌책방 바깥에 내놓은 책에서도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인간에 대한 취향도 참으로 폭이 넓다면, 날마다 마주치는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낸다. - 우민(愚民)ngs01
최신 책일수록 더 금방 구식으로 변한다. - 우민(愚民)ngs01
독창성을 떠받들어서는 아무도 독창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고, 작은 일에도 그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라. 그러면 소위 독창성이 저절로 찾아온다. - 우민(愚民)ngs01
책 속에 있지 않고책을 통해‘ 오는 것 - 우민(愚民)ngs01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이렇듯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워지게 하는 것이 바로 문체의 위력이라네. - 우민(愚民)ngs01
해외로 떠나는 휴가를관광객으로서만 보내는 일은내게는 유럽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난 시대의 문학에우리 자신의 얼굴만 비추어 보고 만다면그것은 과거를 낭비하는 것 아닐까? - 우민(愚民)ngs01
나는 뻔히 틀렸거나 편향된 역사를아이에게 사뭇 진지하게 주입하는 행위야말로아주 해롭다고 생각한다. 이는 영웅의 전설을 마치 사실인 양교과서에 칙칙하게 위장하는 것이다. - 우민(愚民)ngs01
사치
사치는 가난이나 마찬가지로 부덕不德이다. 우리의 목표는 풍성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것이어야 한다. - 우민(愚民)ngs01
P. 62 쉰 살 때도 똑같이 (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 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물론 정보 도서는 예외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 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 moonnight
P. 165 조금만 더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얕고 넓게 읽거나 깊고 좁게 읽거나 둘 중 하나지.
친구 아서 그리브즈에게 보낸 편지, 1919년 3월 2일 - moonnight
P. 133 문학의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은 즐거움을 위해 가볍게 읽도록 되어 있다. 느긋하게 앉아서 어떤 의미에서 ˝재미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문학을 본래 용도로 쓰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의 모든 비평도 순전히 허사가 되고 만다. - moonnight
저자 소개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의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1963년 작고. 홍성사가 역간한 루이스의 저작으로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예기치 못한 기쁨》, 《천국과 지옥의 이혼》, 《헤아려 본 슬픔》, 《시편 사색》, 《네 가지 사랑》, 《인간 폐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개인 기도》, 《기적》, 《영광의 무게》, 《루이스가 메리에게》, 《피고석의 하나님》,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숙고》,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세상의 마지막 밤》, 《실낙원 서문》, 《오독》, 《이야기에 관하여》, 《현안》, 《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렐란드라》, 《그 가공할 힘》이 있다. 접기수상 : 1957년 카네기상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계적인 걸작 《나니아 연대기》 작가 C. S. 루이스 그는 머릿속에 도서관이 통째 들어 있던 독서가였다?
《나니아 연대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등 수많은 인생에 감화를 끼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들의 저자이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오랜 시간 영문학을 가르쳤던 존경받는 스승,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칭송받는 C. S. 루이스. 그는 매일 일고여덟 시간 책을 탐독하던 사람이었다. 루이스의 유명 저서를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에세이, 편지 등에서 '삶의 변화를 낳는 독서 행위'에 대한 글을 엄선한 책이 출간되었다. 영상물이 세상을 독식해 가는 요즘, 독서욕을 공유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재미있고 기발하고 지혜로운 글들을 선별해 엮은 《책 읽는 삶》.
당장 책장으로 달려가 책을 펼치고 싶게 만드는 책!
"요즘 책과 옛날 책을 번갈아 읽어야 한다", "동화,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 "재미로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등 문학 읽기를 중심으로 독서 생활 전반에 대한 루이스의 흥미롭고 다채로운 지혜를 담았으며, 그에게 영향을 준 책과 작가들에 대한 서평이나 단상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자녀에게 어떤 책을 읽히는가?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는가? 문학 읽기의 참맛과 그 중대한 의미를 일깨우다!
"책이 곧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깨닫던 어린 날의 희열을 그는 평생 잊지 않았다"
신성한 숨을 내뿜는 문장의 숲을 거닐다! 현실을 더 잘 살아내도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시간
독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하면서 즐거움까지 안겨 준다. 루이스는 독서가 몸에 배어 있었고 또한 깊이 몰입해서 읽었다. 동료 학자들은 그가 도서관에 몇 시간씩 앉아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책을 정독하며 그 내용을 빨아들였다고 증언한다. 자택 서재에서 책을 읽을 때는 대개 여백에 메모도 하고 책 안에 색인도 손수 만들었다. 또 책이 무익하다 싶으면 뒤표지 안쪽에 "다시는 읽지 말 것"이라고 써 놓는 등 독서를 즐기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이들은 "루이스에게 독서란 고결한 소명이자 끝없는 만족의 출처였다. 손에 책만 들었다 하면 그가 취미로 책을 읽는지, 책 읽기가 직업인지 구별이 불가능했다. 그의 세계관과 정서는 그가 읽은 모든 책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라고 평한다. 루이스의 인생을 빚어낸 독서 생활로 당신을 초대한다.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즐거움에 동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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