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93편 | 김정남 | 2024-06-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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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인 시편 93편에서부터 99편까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고백하고 선포하고 찬양하는 점에서 한 묶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1절의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주님은 왕이시다)는 선언은 이어지는 일곱 시편에 대한 도입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온 우주에 미칩니다. 온 세상이 제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 전부터”(2절)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영원 전”이라는 말은 모순입니다. ‘영원’에는 전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큰 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위협하는 힘을 상징합니다. 바다가 미친 듯 날뛰는 모습을 보면 공포스럽습니다. 큰 파도가 밀려오는 해일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폐허만 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을 쓸어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 물소리보다 더 크시고 미친 듯이 날뛰는 물결보다 더 엄위하신”(4절) 분입니다. 홍수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멸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의 움이 돋아납니다. 또 얼마가 지나면 폐허의 자리는 파릇한 새싹의 풀밭으로 변합니다. 그런 모습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주님의 증거는 매우 확실하고 견고하게 서 있으며, 주님의 집은 영원히 거룩함으로 단장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의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로, 이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눈에는 몇몇 능력 있는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우주와 자연 세계는 저절로 그렇게 운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주와 자연을 운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손길이 부족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너무 조급하고 성급한 우리는 그분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 방법을 알아도 그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손을 떼신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하나님은 다스리고 계십니다. 영원 전에도 그랬고 영원 후에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분께 전적으로 맡기고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눈 질끈 감고 우리 식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화를 자초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배 아픈 후회를 합니다. 이 후회를 얼마나 거듭해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견고히 믿고 잠잠히 그분께 의지할 수 있을까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고 헛된 것만을 추구하다가 떠납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을 바라보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죄 앞에서 한 없이 약한 우리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의 힘으로 살 수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살아갈 때만,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우리에게 밀려오게 되며 바로 그 권위와 능력이 우리가 죄악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상의 파도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의 인생을 다스리시며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새 힘과 용기를 얻고 그분에게 온전히 내 인생의 문제들을 맡기고 살아가는 한 날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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