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01편 | 이우식 | 2024-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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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1편은 100편과 연결된 시편처럼 보인다. 서론이 없고 바로 찬양시로 들어간다. 찬양의 근거는 하나님의 성품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인자’와 ‘정의’를 언급하고 그로 인해 찬양하는 이유를 삼는다. 인자와 정의는 곧 사랑과 공의로 바꿔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중심적인 성품이 사랑과 공의이시다. 사랑을 행하시되 공의롭게 진행하시며, 공의를 집행하시되 사랑으로 품으신다. 이 두 가지는 어찌 보면 서로 대조되지만 하나님 나라 안에서 반드시 공존해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이 두 가지의 성품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사역이 ‘십자가’사역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절묘하게 조화가 되어 있다. 인간을 사랑하시되 죄를 용서할 수 없어 공의를 행하셨으며, 죄를 벌하시되 그 사랑이 기초가 되어 시작된 구속사역이시다. 이 두 가지의 성품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시편 기자는 ‘완전한 길’과 ‘완전한 마음’이라고 여긴다(2절).
'완전'이라는 단어는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말이다. 완전과 완벽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다. 인간은 '온전'이란 단어를 쓴다. 단어의 어원은 '그물을 깁다'란 의미에서 왔다. 완전이 새 그물이라면, 온전은 찢어진 그물을 기워 사용하는 것이다. 죄와 악으로 뚫려진 그물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기워져 사용되는 그물인 것이다. 온전함으로 나아가 완전한 하나님을 닮고 싶은 시편기자는 앞으로 자신의 삶에서 하지 않는 것 7가지를 밝히고 있다. 1.비천한 것(3절) 이 비천한 것은 더러운 생활, 정욕대로 버려진 생활을 의미한다. 집에 아내를 두고 다른 집에 다른 여자를 두며 살아가는 생활을 뜻한다. 아내 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온전해질 수 없는 것은 공의가 만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배교자들의 행위(3절) 배교자들은 비판이 전문이다. 칼날 같은 비판을 쏟아 부으며 잘잘못을 자신의 논리와 이성으로 따진다. 그리고 교회 문을 박차고 나간다. 그에게 개인적인 공의는 충족되었는지 몰라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있다.
3.사악한 마음(4절) 다른 이들을 아프게 하면서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챙기는 사악한 마음이다. 가족을 사랑해서, 자신을 사랑해서 이문을 남겼었는지는 몰라도 그에게 공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4.악한 일(자) 악한 자와 함께 하는 사람에게 우정과 의리는 있을지 모르나 그에게 공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5.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5절) 이런 이에게 공의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6.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이다.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지도 만들지도 못하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다. 이것에 공의는 있을지 모르나 사랑은 없다.
7.거짓을 행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7절) 행위에서 거짓, 즉 가식과 외식이 있고, 그 입이 벌려지면 쏟아 내는 것이 거짓이라면 그에게는 공의나 사랑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지 세상의 성품을 닮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사역의 현장에서 사랑과 공의가 조화롭게 섞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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