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4편 | 이우식 | 2024-0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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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신분과 자격’이다. 신분과 자격은 구원과 성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 개념을 잘 모르면 자신이 믿는 기독교를 하위 종교로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격에 의해 구원받지 않고, 신분에 의해 구원받는다. 자격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말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한다. 즉 공덕을 쌓거나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 믿음이나 은혜에 있지 않고 행위에 있게 된다. 자격증은 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분은 그렇지 않다. 회장집에 태어난 자녀는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상관없이 회장의 자녀가 된다. 자신이 거부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우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 정해진다. 신분은 그런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신분에 의해 결정된다.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헌금하고 예배 생활하고 헌신해야 구원의 자격을 따는 것이 아니라 신분으로 거듭나고 자녀가 되었기에 헌신, 희생, 봉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객이 바뀌면 안 된다. 신분이 먼저이다. 그다음에 하나님의 자녀에 맞는 자격을 하나씩 갖추어 가야 한다. 시편114편은 출애굽 할 때,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토’라고 선언한다(2절). 여기서 ‘되고’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구원을 말한다. 가나안 땅은 원래 이스라엘의 것이 아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의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땅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땅이 되게 하셨다. 그 사역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은 없다. 그러니 자격이 아니고 신분으로 하나님 백성들은 태어나고, 하나님 나라는 세워진 것이다. 이 신분을 획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3가지의 큰 역사를 이루셨다. 이 역사는 거룩한 신분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의 양식이기도 하다.
첫째, 홍해와 요단강의 물을 도망가게 하셨다(3, 5절). 3절과 5절에 걸쳐서 두 번이나 홍해와 요단을 언급하신다. 이것을 고전10:1-2에 따르면 ‘세례’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받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세례’이다. 세례란 세상과 연결고리를 끊고 하나님과 연결되겠다는 선언이다. 세상으로는 죽고 하나님께로 살겠다는 약속이다. 이 일이 신분을 획득한 이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례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책임이 있다.
둘째, 시내산의 율법이다(4, 6절). 산들은 뛰놀고, 작은 산들은 뛰었다.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산이 뛰놀았던 것은 시내산에서 율법의 말씀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즉 말씀을 받은 것이 신분을 받은 이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두 번째 역사이다. 신분을 받고, 세례를 받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율법인 말씀을 주심으로 알게 하셨다. 하나니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께 받은 말씀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 일이 얼마나 기쁜지 산이 뛰놀정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행할 구원받은 사람의 조건이 된다.
셋째,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사건이다(7, 8절). 반석에서 물이 나올 때에 땅은 떤다(7절). 왜냐하면 그 물은 40년 동안 나왔고, 물이 나온 곳은 반석이다. 이 반석을 고전10장4절은 ‘그리스도’라고 명한다. 이것은 ‘임마누엘’의 축복을 의미한다. 광야40년 동안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들과 늘 함께 하신다. 신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방치하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하시는 축복이다. 잊지 말아야 할 신앙의 조건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분을 받았다. 그 신분 받은 사람다운 행동이 바로 세례받은 사람답게,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임마누엘의 삶을 살아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거룩한 신분을 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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